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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얕은 취미🤷🏻‍♂️/사진📸

필름의 맛

by 낫배두 2020. 3. 7.

쓴맛.

 

중학교 2학년즈음 이유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우리집에 디지털카메라가 생겼다.

그 당시 120만 원 상당의 고가품이었고 카메라라는 제품 자체가 약간 사치품? 같은 느낌이라

어느 집에나 카메라가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 집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없을 때엔 소풍이나 가족여행 전 부모님께서

어디선가 카메라를 빌려오셨던 기억도 난다.

무튼 그 정도로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 갑자기 100만 원이 넘는 카메라가(그것도 무려 디지털)

집안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어린 나에겐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운 존재였다.

(내가 워낙 잘 떨어트려서 부모님이 카메라 근처에 못 가도록 하신 건 아니다...!!)

그 카메라는 그렇게 멀리서 바라만 보다 어느덧 기억에서 사라졌고

5~6년이 흐른 뒤 군대를 가기 전 우연히 안방 장롱에서 묵혀있던 그 카메라를 발견하였다.

입영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라 세상의 모든 존재가 아름답고 고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으므로

카메라를 마주하는 순간 나의 마지막 기억의 조각들을 사진으로나마 기록해두고 싶었다.

카고 바지 주머니에(그 당시 카코 바지가 유행이었다.) 많이 맵지 않은 스낵면 한 봉지를 넣어두고

어깨엔 카메라를 두른 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배고플 땐 스낵면 뽀개 먹으며 그렇게 하염없이

걷고 찍고 맛보고 즐기고 다녔다.

그렇게 사진에 대한 관심이 꽃봉오리마냥 피어날 때쯤 국가에선 꽃봉오리를 채취해갔다.

그렇게 꽃을 피우지 못하고 다시 저 먼 기억 속에 그리고 장롱 속에 묻어두었다.

글을 쓰다 보니 씁쓸해서 쓴맛이다.

 

단맛.

 

"쓴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 쓴맛의 약효는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았고

무언가 표현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또 시간은 어느덧 10년 이상 훌쩍 흘러 나는 지금 30대 중반이 되었다.

(쓴맛을 기억해내기엔 좀 오래 지난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동안 스마트폰의 개발과 폭풍 발전을 통해 이제 우리는 누구나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셈이 되었고 나 또한 사진 폴더에 약 1만장 정도의 스마트폰 사진이

쌓였다. 알게 모르게 사소한 것부터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고 빠른 결과물에 대한 편리함에 완벽 적응되었을 때쯤 

문득 이 많은 사진들이 파일로 존재하지만 언젠가 사라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온라인으로 사진을 인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어차피 언제든 빠르게 처리가 가능하니

오히려 느려져 보고 싶었다.

모든 게 빨리빨리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점에 어느 한 가지쯤은 느리게 가고 싶었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를 알아보게 되었고 알아본 필름 카메라의 세계는 

마치 나만 몰랐던 것처럼 회원수 10만명이 넘는 카페와 중고거래까지 활발한 세계였다.

중고를 딱히 선호하지 않지만 필름 카메라는 새 제품이 생산되지 않으므로 

민트급 정도를 구하는 게 타협점이었다.

참 오랜만에 무언가에 빠져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워본 기억이다.

그리하여 얻게 된 나의 첫 번째 카메라

 

미놀타 af-d

af는 auto focus의 약자로 자동초점을 뜻하고

d는 date 날짜를 표시해준단 뜻이다.

카메라 브랜드 중에서 미놀타는 처음 봤는데

단지 이름이 뭔가 그럴싸해서 찾아보니

1933년부터 카메라를 만들어온 일본의 기업이었고

나중엔 코니카와 합병된 걸로 알고 있다.

미놀타 중에서도 유명한 기종이 여러 개 있었지만

필린이 로서는 일단 오토포커스가 마음에 들었고

날짜까지 기록된다는 기능에 푹 빠져버렸다.

(하지만 년도는 90년대까지 기록되더라는...)

 

<나름 어울리는각도>

 

 

    <각도의 중요성>

    <주인이 안티>

 

 

사진을 보니 나는 빵을 좋아한단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필름만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한동안 나와 한 몸처럼 붙어 다닌 것 같다.

아버지와 둘이 바닷가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께 옛날 감성을 꺼내드리려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갔으나 아버지는 드론을 날리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필름 카메라로 드론을 찍어 현상해서 보내드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듯 나는 이미 필름 세계에 빠졌고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다시 밤을 새워가며 다른 카메라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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